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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

삶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저) - 기억하고 싶은 구절들

by 로드러너 2021.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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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읽을 때 알 듯 모를 듯 여운이 남아 기억에 각인된 책이었는데 그 여운 때문이었을까 다시 읽게 되었다. 오랜만에 다시 읽고 크게 공감하는 구절이 있어 기록으로 남겨본다. 

 

p.59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해서는 안 됩니다. 순전한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쏟아버리고 나면 우리는 이전보다 더욱 비참하고 두 배나 더 고독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 속을 보이면 보일수록 타인과 더욱 가까워진다고 믿는 것은 환상입니다.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말없는 공감이 제일입니다.

 

p.65-66
우울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어. 니나는 천천히 말했다. 온갖 아름다움이란 것이 일시적이고 다만 얼마 동안 빌려온 것이 라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 그리고 우리가 인간들 틈이나 나무와 극장과 신문 사이에 있으면서도 마치 차가운 달 표면에 앉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독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은 누구나 다 우울하지.

그런데 이 세상에는 거짓 우울도 있는 법이야. 언니는 사람들의 눈을 보아야만 해. 많은 사람들에게 우울은 겉으로만 그럴 뿐이고 어떤 의도 내지 센티멘털리즘의 표시일 뿐이야. 정말로 우울이 깃들인 눈에는 활기, 집중, 분주함 같은 것들이 있지.

 

가끔은 좀 덜 이성적이 되고, 아주 커다란 어리석은 행위를 범하고, 미친 듯한 혼란 속에 빠져들어 갈 수 있다면, 얼마쯤의 희생은 감수해도 된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어.


p.119
이 점에서는 나는 슈타인 편이야. 생각해 봐. 내 시가 형편없다면, 정말로 형편없어서 형식 뿐만 아니라 내용에도 감상적이고 싸구려라면, 나 자신의 내부에도 감상벽과 싸구려 경향이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거야. 누구든 그가 쓴 것과 똑같아. 이걸 분리시킬 수 없어. 만약 언니가 좀더 날카롭게 주의해 본다면, 모든 가짜를 꿰뚫어볼 수 있을 거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어. 내 말이 너무 냉혹하고 이기적으로 들리지? 그럴 거야.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을 사랑하는게 아니라 그 사람의 재능으로 인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니나 언니가 실망하자 니나가 한 말)

 

p.130
성당에서 그의 설교를 듣는 청중 그 누구도 그가 과거에 되새기고 싶지 않은 내적 혼란을 겪었다는 사실을 모를 것입니다. 니나는 이 말을 비꼬지 않고 또 악의 없이 말했으나 그 무뚝뚝함은 조롱보다도 더 날카롭고 가혹한 것이었다.

 

p.136
피로와 절망, 이별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약속.

 

p.149-150
하지만 정작 인생에는 한 가지 계산서도 없고 아무런 결말도 없는데 말이야.

모든 것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고 아무 논리도 없으며, 모든 것은 즉흥적으로 생성되고 있어. 그런데 사람들은 거기서 한 조각을 끌어내서는, 현실에는 없고 삶의 복잡함에 비하면 우수울 뿐인, 작고 깔끔한 설계에 따라 그것을 건축하고 있어. 모두가 꾸민 사진에 지나지 않아.

 

P.
우리는 영웅이 아니야. 가끔 그럴 뿐이야. 우리 모두는 약간은 비겁하고 계산적이고 이기적이지. 위대함과는 거리가 멀어. 내가 그리고 싶은 게 바로 이거야. 우리는 착하면서 동시에 악하고, 영웅적이면서 비겁하고 인색하면서 관대하다는 것, 이 모든 것은 밀접하게 서로 붙어 있다는 것, 그리고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한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행위를 하도록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아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걸 말야.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도 그것을 간단하게 만들려는게 나는 싫어.

 

p.163
너무나 멋진 아침이었다. 이런 아침은 다른 때라면 내가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시간이었다. 해뜨기 직전의 시간은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쌀쌀하고 냉정하고 차가우며 엄격했다. 세상이 드러나기 바로 직전의 휴식 시간, 마치 자연의 호흡이 멈춘 듯한 시간, 어떠한 소리도 생명력이 없는 듯한 무시무시한 시간, 해뜨기 직전의 시간은 시간보다는 영원에 더 가까웠다. 이날 아침 나는 처음으로 그 시간이 내뿜는 완강한 적의를 느꼈다.

 

p.233
처음으로 나는 슬픔도 재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p.277
아침이었다. 새해 아침이었다. 새로운 밝은 기분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수년 전부터 알지 못하고 지냈던 생의 위기가 극복되었다고 느낀다. 이제 나는 알았으니 더 이상 그것으로 미망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니나를 사랑한다. 나는 절대 잃을 수 없는 새로운 순화된 방식으로 나니를 사랑한다. 나를 구원한 그 고통에 대해서 나니에게 감사한다. 지난밤의 눈물은 내 인ㄴ생의 경직된 궁핍함을 씻겨 내려가게 했다. 남아 있는 것은 이 새로운 밝은 기분의 어두운 밑바닥인 체념의 슬픔이다. 니나는 내가 가지려고 했고 되기를 원했던 모든 것에 대한 비유일지 모른다. 그렇게라도 항상 있어주면 좋겠다. 니나는 생 자체에 대한 비유이다.

 

p.331-332
내가 놀란 것은 죽음을 앞둔 인간이 그렇게 침착하고 분명한 편지를 쓸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정말 놀랐다. 경악했다는 편이 옳으리라. 니나가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비탄조로 썼더라면 더 자연스럽고 마음에 들었을 텐데. 그녀는 끔찍할 정도로 자기를 제어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며칠 전에, 많은 힘을 갖고 있으면 위험하다고 한 말의 뜻을 이해했다.

그러나 한번은 약해질 수 있는 것이 더 인간적이리라. 나는 사람이 너무 많이 억누르면 별로 얻을 게 없다고 확신한다. 나처럼 사는 게 틀린 것은 아닌 것이다. 약간은 게으르고, 무심하게, 자신과 타협하고, 특별히 마음 쏟는 일 없이.